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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 ACE+사업 참여후기(THC_19기_초급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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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여름, 지역아동센터로 일주일 간 교육현장활동(교활)을 다녀왔다. 낯선 선생님들, 학생들 속에서 어설퍼하는 내 모습을 봤는지 한 학생이 내 손을 잡아끌었다.

○○쌤은 어디에서 왔어요?”

, 나는 대전에서 왔어. 대전이 어디냐면...”

저도 대전에서 살았는데, 아빠가...”

 대화는 사소했지만 편안했고, 그 후로 지은이(가명)는 줄곧 나를 따라다니며 말을 걸었다. 더 이상 나에게 이 센터는 낯선 곳이 아니게 되었다. 문제는 내가 수업에 들어간 후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게임을 하기 위해 조를 나누자,

아 선생님 지은이랑 같은 조 하기 싫어요!” 라고 대놓고 말하는 학생부터, 전지에 차례로 그림을 그리다 지은이가 펜을 쥐자 아 쟤도 그려, 망했다.” 며 투덜대는 학생들까지. 그럴 때마다 지은이는 그냥 웃어넘기고, 심지어 저리 가라는 친구에게 사탕을 쥐어주며, “그럼 이 사탕 줄 테니까 나랑 놀자.” 라며 힘겹게 관계를 유지하려 애썼다.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해결과정에서 지은이가 상처받지 않을까? 교활 선생님들과 회의를 거듭한 끝에, 우선 지은이의 의사를 묻기로 했다.

지은이가 ○○쌤을 제일 잘 따르니까, 상담을 맡으면 좋을 것 같아요.”

 상담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진로상담밖에 받아본 적 없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 몰라, 산책도중 지은아, 선생님이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라고 이야기를 꺼냈지만 지은이는 계속 말을 돌리며 대답해주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센터 선생님에게 지은이의 상황을 전했지만. 선생님은 따돌림 받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며 이는 아이들이 크며 겪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교활은 끝났다.

 ‘지은이는 잘 지낼까?’ 라는 그리움조차 염치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돌림이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환경 속에서 잘 지낼리 만무한데, 도망치듯 떠나버린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내가 선생님이 되려고 하다니. 몸도 마음도 지쳤고, 무엇보다 내가 가져왔던 선생님이라는 꿈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 휴학을 할까도 했지만, 복수전공을 하고 있어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그렇게 2학기가 시작되었다식당 앞에서 THC, Teacher-Healer-Counselor라는 프로그램 광고를 보았다. 일주일에 2시간은 총 10회기의 집단상담을, 2시간은 상담기법훈련을 한다고 한다. 지난학기만 하더라도 무심코 지나친 프로그램인데 자꾸 아른거렸다. 그래, 무섭다고 피하기만 할 게 아니라 배워야지. 제대로 배워서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심리상담센터를 찾아가 등록했다. 집단상담 시간이 되었다. 별명을 정하며 교활 때의 별명이 떠올라 ○○라고 적었다. ●●, △△,  ◆◆ 그리고 □□□ 선생님까지. 각자의 사연이 담긴 명찰을 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 만난 우리가 과연 서로 터놓고 이야기하는 사이가 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곧 서로의 말에 공감하고 경청하는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나이도, 학번도, 이름도, 학번도 다 비밀로 한 이 공간에서는, 오롯이 나 자신과 상대방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을 영화 시나리오로 제작해 보며 그 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 중에서도 내가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은 무엇인지 떠올려보기도 하고, ‘나에게 중요한 타인이 되어 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보는 나의 모습은 어떨지 고민해보고, 가족화를 그려보며 지금의 나를 만든 가족에 대해서도 이해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집단원들끼리 서로에게 주고 싶은 것,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림으로 그려 선물해주기도 했다. 9회기에는 반영-인정-공감으로 이어지는 이마고 커플 대화법을 배우고 직접 해보며 깊이있는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특히 내가 느끼는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 할 때, THC를 시작하게 된 계기인 교활 때의 사건, 그리고 그 때 느낀 무력감과 나의 부족함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애썼을 모습이 그려진다며 수고했다고 말해주었다. 집단원들이 본 내 모습은 사람을 배려하는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도.

무기력하고 스스로를 부족하게만 생각하던 나는 집단상담을 진행하며, 나는 지금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단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했을 사람들과 만나 관계를 시작하고, 이어가고, 깊어져가는 그 과정이 아직도 생생하게 마음을 채우는 집단상담 시간이었다.

 상답기법 훈련에서는 인성, 생활지도/진로/학교폭력/자살위기관리의 주제영역을 다루었는데, 기본적인 이론에 대해 배운 후, 사례를 통해 역할극을 진행하며 배운 내용에 대해 훈련해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인성, 생활지도에서는 특히 나 전달법에 대해 배우고 훈련했는데, 흔히 사용하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와 같은 명령식의 화법을 들으면 오히려 반발감이 드는데, ‘나 전달법을 사용하면 상대방의 감정을 잘 느낄 수 있어 상담기법훈련이 끝난 후에도 종종 사용하게 되었다. 또한 역할극을 하는 과정에서 문제행동을 일으킨 학생의 입장에도 서 보았다. 선생님의 입장을 벗어나니 시야가 넓어진 느낌이 들었다. 학생의 입장에서는 어떤 말이 상처가 되는지, 어떤 말은 하고 싶지 않은지 느끼게 된 경험이었다.

진로 상담을 배우면서 직접 STRONG 직업 흥미 검사에 참여해 보았다. 리더 선생님들이 표를 보며 검사지를 해석하는 방법 및 절차에 대해 알려주셨는데, 학교 다닐 때 MBTI, STRONG 검사를 받은 적은 있는데 담임선생님, 혹은 상담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어서, 교사가 되면 이러한 심리검사를 잘 활용하여 학생상담에 이용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상담기법 훈련 마지막 날에는 직접 상담실습 사례를 작성해보았다. 가장 마음에 남아있던 지은이와의 일을 사례로 구성해보았다. 내담자 정보, 가족사항, 강점 및 약점, 호소문제, 상담 목표, 상담 방법, 상담에서 다루고 싶은 내용들을 차례로 적어나갔다. 파트너와 이를 토대로 직접 역할극을 해보며, 한 학기동안 진행했던 집단상담과 상담기법훈련을 통해 나의 들어주는 방식, 말하는 방식이 많이 바뀌었음을 실감했다. 하루아침에 좋은 사람,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다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THC 프로그램은 나를 되돌아보고 더 나은 내일을 향한 한 걸음을 딛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앞으로도 THC 중급, 고급에도 참여해 상담에 대해 더 배울 예정이고, 그간 접어두었던 교육현장활동도 다시 참여해 학생들을 만나려 한다. 두려움이 많은 나에게 집단원이 선물해 준 그림 스쿠터를 타고.